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로 평화를 : 2026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나가사키대회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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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참여연대는 원수폭금지 일본국민회의(이하 원수금)의 초청으로<원폭 81년, 2026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는 전 세계 피폭자들과 연대하여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국제연대를 논하는 자리입니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마음을 담아, 평화군축센터 김동진 실행위원과 이미현 협동사무처장의 참가기를 게재합니다.

전쟁의 시대,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이 필요한 이유

원폭 81년, 2026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참가기
서로 배우고 연대하는 힘으로 동아시아 평화공존을

이미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원수폭금지 일본국민회의(원수금)가 개최하는 <원폭 81년, 2026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나가사키 대회가 8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열렸습니다. 원수금의 초청으로 나가사키 대회에 참가한 저는 8월 7일 대회 개회식과 8월 8일 ‘평화와 군축’ 워크숍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전쟁종식, 동북아 평화와 군축 문제에 대해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원수폭금지대회는 “핵도 전쟁도 없는 평화로운 21세기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개최됩니다. 81년간 이 세계대회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활동해 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이 슬로건과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그리고 올해 2월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전쟁까지 가히 전쟁의 시대라 할만 합니다. 핵무기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핵무기금지조약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일본 내에서도 비핵3원칙을 재검토하겠다는 다카이치 정부의 입장이 계속해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열린 나가사키 대회는 핵과 전쟁의 위협에서 어떻게 시민들이 평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 머리를 맞대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원폭 81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나가사키 대회 개회식 ⓒ 원수금

히로시마 대회를 마치고 넘어온 참가자들은 나가사키 원폭투하일인 8월 9일까지 2박 3일간 일본 내외의 핵무기 금지 노력과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평화운동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며 나가사키 대회를 이어갔습니다. 대회 몇 주 전 나가사키 인근 구마모토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현지 참석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의 참여 속에 개회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피폭자 차별하는 일본정부

나가사키 대회 개회식의 하이라이트였던 피폭자 증언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피폭의 고통과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카와노 코이치 공동집행위원장은 핵폭탄이 떨어질 당시의 굉음과 폭발 그리고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 등 5살 나이에 이유를 알지 못하고 겪은 고통을 설명하며 다시는 이 땅에서 핵폭탄 사용이 반복되지는 않도록 우리 스스로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하게 호소하셨습니다.

증언 중간에 피폭자 어르신은 일본 정부가 자국민인 일본인들에 대해서도 피폭자와 피폭체험자를 나누어 구분하고 차별한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피폭체험자란 피폭 당시 일본 정부가 지정한 피폭 지역 안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인 ‘피폭자’로 인정받지 못한 원폭 피해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핵폭탄 투하 당시 핵폭발의 빛이나 버섯구름을 목격하고 방사능 비를 맞아 피폭을 당했음에도 정부가 정한 구역 경계선 밖에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가사키 대회에서 피폭자 증언을 하고 있는 카와노 코이치 씨 ⓒ 원수금

문득 한국인 피폭자들이 떠올랐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수많은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실제 원폭투하 전체 희생자의 20% 가량이 조선인이었다고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일본 정부로부터 외면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일본국적도 아니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 이제는 일본 내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의료를 포함한 어떠한 지원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 피폭자분들을 떠올리며 피폭자들을 차별하는 일본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북아 평화공존을 위한 한일 시민사회의 역할

두번째 날은 참가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이뤄지는 워크숍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배우고 토론하는 일정으로 이뤄졌습니다. 저는 ‘평화와 군축 – 국제 정세’ 주제의 워크숍에 발제자로 참여했습니다. 워크숍의 첫 번째 순서는 지난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의 일본사무소에서 활동하는 아사노 히데오 씨가 핵무기 관련 국제 규범들을 소개하고 특히 올해 4월에 있었던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 결과의 의미와 일본 정부에 대한 평화운동의 과제를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워크숍 참석자들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사회민주당 당원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는데, 핵무기를 금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배우고 자신들의 과제를 토론하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한국 평화운동의 최근 활동을 소개하고 당면한 과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특히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고 남북 관계가 단절된 이후 한국의 평화운동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실패했는지 성찰을 지속해 왔다고 소개하며, 최근에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지키면서도 핵능력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에 대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고 공유했습니다. 특히 군사적 긴장을 우선 낮추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시민사회 역시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지금의 동아시아 긴장과 갈등에 한국과 일본의 역할과 책임이 무겁다고 지적하며 지역 군사동맹 구도에 가장 깊이 연루되어 있는 양국의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동아시아의 다자협력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군사동맹 중심의 대립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발제를 듣고 질문을 이어갔는데 특히 언론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고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보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한국 등 다른 국가의 상황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인 위령비와 11시 2분 울려퍼진 종소리

나가사키 대회 마지막 날인 8월 9일은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지 꼭 8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아침 7시 30분, 우리는 나가사키 폭심지 인근 조선인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린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희생자 추모조조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추모비는 1979년 양심적 일본인들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모금해 세운 것입니다. 근처에 2021년 세워진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도 있었는데, 해당 위령비에서는 전날인 8일 민단 중심의 재일교포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나가사키 폭심지 인근에 위치한 조선인희생자 추도비 ⓒ 참여연대

8월 9일 오전 7시 30분에 개최된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희생자 추모집회 ⓒ 참여연대

예정된 시간이 되자 칠팔십여명의 사람들이 추모비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일본인이 반, 한국인이 반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발언은 나가사키 지역 한국인(조선인) 원폭 피해자 대표의 발언이었습니다. 강제동원돼 일본에 끌려와 고된 노동에 피폭까지 당한 조선인들에게 일본정부가 지금껏 사과하지도 피해지원도 하지 않은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제라도 사죄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주일 전 부산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군함도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지적되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아시아인들을 참화로 몰아 넣고 수탈했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과연 오늘날 과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고 있을지 불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정부의 태도와 달리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향해 목소리 내왔던 일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날 나가사키 대회 마지막날에도 그 시민들이 모두 모여 폭심지까지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폭심지에는 피폭자들 이름을 봉안한 폭심지 상징탑과 여러 추모비가 공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미 탑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81년 전 핵폭탄이 투하됐던 그 시간 11시 2분이 되자 멀리서 들려오는 추모의 종소리와 함께 수백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탑 둘레에는 지난 1년 간 시민들 손수 접어서 만든 색색의 종이학이 수천개 걸려 있었습니다. 핵무기 반대와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접은 종이학입니다. 한 순간에 수만의 목숨을 앗아갔던 핵무기의 위험성과 그 날의 비극을 떠올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일본 시민들과 원수폭금지대회 참가자들이 폭심지까지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 원수금

청소년들의 핵무기 금지 운동

묵념 시간이 끝나고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아가 헌화하고 추모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피폭자들로 추정되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나가사키시 공무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습니다. 원폭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이 86세라고 합니다. 남아 있는 원폭 생존자들도 멀지 않아 세상을 모두 떠나게 되어 일본 평화단체들에게 있어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이어가고 평화운동을 전수할 것인지가 큰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계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비극의 기억을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평화의 노력을 전수하기 위한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피스메신저(Peace Messenger)라는 고등학생 핵무기금지조약 서명 캠페이너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전국적으로 핵무기금지조약 서명 운동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대표해 이번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대회 기간 중에도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왜 이 서명이 중요하고 핵무기가 금지돼야 하는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핵무기금지조약 지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 고등학생 캠페인단 ‘피스메신저’ ⓒ 참여연대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는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는 피스메신저 고등학생들 ⓒ 참여연대

고등학생 캠페이너들은 8월 9일 나가사키 평화스타디움에서 개최되는 축구경기에 입장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도 서명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들이 외치는 서명 독려 목소리에 시민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응하며 서명하고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이번 대회에 한국인 고등학생 두 명도 초청받아 함께 했는데 이들 역시 일본인 고등학생들과 함께 핵무기 사용의 인도주의적 문제, 핵무기 금지가 왜 중요한지 학습하며 서명 캠페인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전쟁의 기억이 흐려지는만큼 호전적인 군비경쟁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시대에 과거의 참화를 기억하고 평화적 노력을 대대로 이어가려는 일본 시민사회의 이런 시도가 소중하고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생존자들과 일본 내 평화운동가들이 핵 없는 세상을 위해 평화운동을 펼쳐온지 수십년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 내 핵억지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고 다카이치 정부의 비핵3원칙 재검토 시도가 임박하면서 핵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는 점점 더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하에 이 땅에 핵무기 개발과 사용의 어떤 위협도 없애겠다 노력해 왔지만, 지금은 당장 남북 간 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예방해온 힘들이 있고 이러한 힘을 키우는 것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협력과 외교적 해결을 우선시하는 것, 당사자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목소리가 바로 그러한 노력들입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 구도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나라로서 양국의 시민사회는 국가의 군사력 만능주의를 저지하고 국제규범을 존중하여 대화와 외교 등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도록 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함께 연대함으로써 핵무기를 포함한 반인도적인 무기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 그래서 전쟁이 없는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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